현실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참담함과 암울한 현실인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더 감상적이고 병적인 낭만주의의 ‘폐허’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의 의도와 목적이 잊혀지고, 자신과 현실을 저주하는 탄식이 문단을 뒤덮게 되었다.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 조선이요, 우리 시대는 비통한
문학'의 영향을 받아 1920년에 '폐허' 동인(同人)들이 일으킨 문예 사조로 3·1운동 실패에 따른 민족적인 실의와 절망을 감상적으로 반영한 퇴폐적 색조가 짙은 문학이다.
황석우의 상징주의적 경향과 염상섭의 자연주의적 경향과 오상순의 허무주의적 경향 등
⑷ 낭만주의(浪漫主義)
1922년 '백조(白
시대여건과 함께 애국계몽기 전기문학의 영향을 받아 한국 근대 역사소설이 출현하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 허덕이던 작가들이 현실에 대한 불만을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서 거침없이 쏟아낸 것이다.
이러한 산물로 이광수의 『이순신』, 김동인의 『젊은 그들』·『운현궁
낭만주의문학의 온상을 이루게 되었다.
1922년 1월, 동인지 《백조》가 발간되어 홍사용·박종화·현진건·이상화·나도향·노자영·박영희 등이 이에 관여하면서 한국의 낭만주의문학은 본격적으로 싹트게 되는데, 이들도 《폐허》의 동인들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이상과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시대
문학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한국 근대 문학의 초기적 양상을 제대로 규명하는데 관건이 될 것이다.
근대적 문학 형식은 계몽주의를 벗어나 문학중심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분야라 할 수 있다. 소설문학에 있어서 1920년대는 단편 소설의 시대라 불리는데,
표방하고, ‘개벽’, ‘서광’, ‘학생계’ 등의 종합지와, ‘창조’, ‘폐허’, ‘백조’, ‘장미촌’, ‘영대’ 등 문예 동인지가 창간되고, 개벽사와 한성도서 등의 출판사가 등장하여 근대적 유통구조 기반을 형성한다. 이러한 기반 아래 1910년대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백조』를 간행하므로써 문학 운동의 사회적 기반을 확보한다. 이러한 문학의 경향은 초기에는 민족적 저항의식의 표출로 자리 잡았으나, 민족의식의 추구방식 자체가 집단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사상적인 분화를 가져오게 된다. 3․1운동 직후의 현실 지향적인 문학의 경향은 쉽게 사회
. 그는 1920년에 동아일보사 정치부 기자로서 활약하였으며, 그의 문학은『폐허』의 동인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평론가로 월평을 썼고, 김동인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1921년「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작가적인 실력을 나타냈다. 그리고 1923년까지「암야」,「제야」,「해바라기」,「만
문학의 탐험』, 시공사, 2007
동인으로는 시에 김억, 남궁벽, 오상순, 황석우, 변영로 등이 있고, 소설에는 염상섭, 이익상, 민태원 등이 있다.
폐허의 제호는 실러(Schiller J.C)의 “옛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하였다. 내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라는 시구에서 인용한 것이다. 또한 후기에 “우리가 황
백조」, 「폐허」, 「장미촌」등의 문학 동인지가 속촐하면서 전문적인 문인들이 등장하여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② 서구 문예 사조의 혼류 : 이 시기에 서구의 문예 사조인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우리 문학의 선구화 현대화를 촉진하였다.
③ 본격